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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소설

[책 리뷰] 작은 것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다신교에서 신은 흔히 그것이 형상화하는 존재와 같이 설명되곤 한다. 번개의 신 제우증명이기도의 신 아폴론, 힌두교 속 창조신 브라흐마 비슈누, 파괴신 시바, 
 이외에도 모든 신은 당대 인간들이 두려워해 이해하고 숭배하고자 하거나. 바라기에 염원하는 대상의 형상이다. 그래서 ‘작은 것들의 신’은 말 자체가 모순이다. 작은 것을 두려워하고 숭배하는 사람은 없다. 작은 것을 염원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신에게는 다른 역할도 있다. 역사의 어느 순간부터 신은 약자, 민중들의 것이 되었다. 그들의 신은 자애와 용서를 의미하며 동시에 부조리해 보이는 것에 대한 분노와 응보의 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신조차 작은 것들의 신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당연한 것이 그만한 관용과 엄격함을 동시에 지니기 위해선 그 자체로 강하고 거대한 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작은 것은 신과 맞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장 특이한 지점은 소설의 문체와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일반적인 소설이 확실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의 관계처럼 처음에 미스터리가 쌓고 시간에 따라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것과 다르게 이 책의 스토리는 가장 처음과 가장 끝부터 어느 한 시점을 향해 교차하며 서술된다. 그리고 문체 또한 스토리가 어떤 시점인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미래와 과거의 묘사를 반복한다. 그래서 이들의 목적지는 시간상 중간이며 이야기는 마치 그 중간의 깊은 구멍을 향해서 미끄러지듯 진행된다

 막 영국에서 벗어난 시점의 인도, 진보라는 이름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 시대적 배경에서 결국 추락할 소설 속 모든 인물은 자신의 미래를 모른 채 제 뜻대로 또는 물에 떠밀려가듯이 힘겹게 살아남고, 투쟁하고, 혐오한다. 
이 거대한 싸움은, 마치 힌두교적 가치, 영국식 기독교,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의 신들의 대리전과 같다. 하지만 그곳에 불가촉천민과 이혼한 여자,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을 대변하는 신은 없다. 이들은 존재해선 안 되는 우연과 비극에 가까운 존재들이기에 운이 좋으면 그들은 연민을 사지만. 전쟁 중인 신들과 그 하수인들에겐 그럴 가식조차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복잡한 구조가 그 이유를 드러난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삶은 시작과 끝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도 굉장히 비참한 방식으로. 그리고 주인공들은 마치 예지처럼 그것을 느낀다. 부당하고 억울하지만, 그들에겐 어떤 거대한 신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한다. 작은 것들의 신에게.

소설의 끝이자, 깊은 구멍과도 같은 이들 시간 가장 밑바닥에는 작은 것들과 작은 것들의 신이 있다. 작은 거미의 모습으로 그들을 필요로 하는 맨 밑의 존재들에게 강림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다.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닌 신의 강림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모든 것들이 결정 돼 버린 작은 것들에게 작은 공간을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들에게 존재 이유를 제공한다. 작은 것들의 신은 바로 작은 것들의 한순간 삶의 의지와 희망의 형상이다. 그리고 비록 정해진 미래에 무너질지언정 그 한순간 그들의 삶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