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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긴 생각

[영화 리뷰] 조커: 폴리 아 되

by 신그자체김상범 2024. 10. 7.

<조커: 폴리 아 되>가 조커란 음악이 끝나는 영화라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기에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노래의 시작이 어디냐는 질문이다.

나는 그 시작이 바로 전작에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1, 2부라는 연관성에 대한 비유를 넘어 <폴리 아 되>는 전작 <조커>와 시작과 끝이라는 단어처럼 대립적으로 구성 되어있다.

물론 뮤지컬의 구성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폴리 아 되>에 비해 1편 <조커>에 제대로 된 음악 세션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음악적인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노래를 대신하는 조커의 춤사위 때문이다.

이 춤은 <조커>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와 더 나아가 영화 자체와 관련 있다. 단적인 예로, 그가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추는 춤은 그 자체로 불가해하다. 이런 춤은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이야기한 디오니소스적 황홀경과도 같다. 그것은 이성에 해석되기 이전의 감정이며, 합창을 통해 자아를 잃고 그것을 표출함으로써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그리스 비극의 예술 양식이었다.

조커의 춤에 담긴 비이성적 의지는, 조커란 영화의 목적과도 연관된다. <조커>는 아서 플렉이란 낯선 인물의 완전히 낯선 행동에 관객들이 동화되도록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영화에 가졌던 양분된 감정은 이 시도를 해석하는 것 관련 있다. 이 감정의 동화를 받아들인 사람은 조커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런 동화를 아서 플렉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범죄자 미화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반면 <폴리 아 되>는 날뛰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활극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영화다. 법정극이라는 형식에서 쉽게 느낄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영화 속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가해하고 확산하는 듯한 1편의 분노에 비해 2편의 노래엔 대상이 정해져 있고 목적이 선언된 가사가 있는 노래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할리퀸. 플렉은 그녀를 자신의 진정한 이해자라고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플렉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느 인간처럼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의 목적도 이루지 못한다. 이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감정을 분출했음에도 한 집단의 영웅이 된 1편과 대조된다.

영화 속 법정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어느 편과 상관없이 모두 아서 플렉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짜 모습이라는 것은 모두 아서 플렉의 한가지 측면에 대한 부정이다. 그의 잔인한 모습을 다른 인격으로 취급하거나 조커로 대변되는 그 모습만을 아서 플렉이라고 믿거나, 어떤 방향에서든 아서는 연기를 해야 했다. 실제로 그는 어느 한쪽의 연기를 계속하며 예정된 결말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이미 예견했듯이 그는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솔직하게 받아들여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까지도 그 희망을 놓지 못했고, 어떤 결말에도 이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가장 솔직한 조커를 바라봤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건 1편을 본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1편을 본 관객들은 작품 속 인간들처럼 조커라는 인물에 대해 특정한 결말을 바라며 영화를 보게 되지만 양쪽의 결말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실망은 애초에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을 한가지로 한 가지로 해석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이해되길 바랬던 아서의 바람이 좌절된 것과 같이 관객들도 같은 좌절을 겪도록 이 영화는 의도되어 있다.

모든 과정을 통해 영화는그는 자신이라고 여겨지는 존재 어떤 것도 아니었다.”라는 다소 식상한 결말을 관객에게 확대할 있었고, 어느 쪽이 원하는 결말도 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원하는지도 몰랐던 감정을 느끼게 했던 전작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렇기에 <조커: 폴리아 > 조커란 노래의 끝이며 노래는 운명을 끝내 거스르지 못하고 파멸하는 그리스 비극의 노래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