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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긴 생각

[영화 리뷰] 시

 

영화를 보고 울면서 생각했다 왜 여기서 눈물이 날까? 이 영화는 크게 슬픔을 강조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왜 그랬을까

예술을 다루는 훌륭한 영화엔 으레 예술과 인물이 상호작용하며 예술을 통해 관객에게 인물을 이해하게하고 그 인물을 통해서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게하는 상호 보완적인 장점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그 인물에 해당하는 양미자 할머니도 그런 특성이 드러나긴 한다. 하지만 그녀와 시의 관계는 별로 일반적이지 않다.

시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는 시나 예술이 아니다. 양미자도 예술에 대해 고뇌하는 예술가보단 그냥 시가 쓰고 싶은 소시민에 가깝다.
애초에 그녀가 제대로 된 시 창작을 하는 장면 자체가 영화를 통틀어 몇 번 나오지 않는데, 부분적으로는 그녀가 처한 상황이 아수라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가 시를 쓰는 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녀의 시 수업 선생은 시가 전혀 멀리 있지 않으며 우리 안에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시는 양미자에게 멀고 먼 소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있다. 그녀가 큰 어려움과 마주할 때마다 노트와 연필을 들고 시상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미 답을 한 선생에게 연거푸 시를 쓸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묻는 것도 모두 그녀가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시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녀는 그렇게 시에 집착하는가? 말했듯이 그녀의 현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현실은 단순히 그녀의 경제적 위기, 가정적 위기, 신체적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됐을 그녀 존재의 소멸에 대한 위기이다.
그것이 자기 자신도 잊게 만드는 알츠하이머라는 병 때문인가? 물론 알츠하이머가 그녀가 처한 부조리의 상징이고 집약체이지만, 그것이 영화 서사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양미자의 존재가 잊히는 병은 이미 영화 속 세상 전체에 퍼져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붕괴된 가정 속에서 그녀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파출부, 합의금 분담 인원, 육체적 대상 등 도구적 목적으로만 간신히 세상에 남아있을 뿐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녀가 이야기한 순간이 3살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가 그녀 자체로서 사랑받았던 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녀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모든 노력을 다한다. 다만 그녀가 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과 개선이 아니라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에 가깝다. 이미 현실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다만 그녀는 조금이라도 통제할 수 있었던 옛날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는 실패한다. 이미 자기를 두고 떠나는 세상을 붙잡아봤자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약속된 결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걸 두 눈으로 지켜보며 양미자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는 바로 거기에서 그녀에게 다가온다.

작별과 축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녀의 마지막 시는 그녀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상황과 절묘하게 맞닿아있다. 시인 선생의 말처럼 그녀의 내면에서 존재하는 시상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 시는 단순한 양미자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그녀가 완성한 이 예술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죽어 서서히 등장인물과 관객들에게 잊혀 간 또 다른 인물 박희진의 마지막 순간과 이어진다. 시공간적으로 전혀 마주하지 않았던 둘이 사실 같은 고통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양미자의 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이 장면에서 운 것도 양미자의 예술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까지 확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영화 ‘시’가 보여주는 것은 한 사람의 비극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관이다. 양미자의 시로서 관객에게 박희진이라는 인물이 되살아나고, 또 얼마간 그것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예술은 약속된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또한 나에게
그 결말이 찾아 오더라도 누군가 내 시를 읽을 때 우리가 그 사람 안에서 짧은 순간을 약속받는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가 죽어간다는 시인 선생의 자조 섞인 말에 반박한다. 아니면 적어도 영화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설득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