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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긴 생각

[영화 리뷰] 쇼잉업 : 예술가와 예술의 필연적 관계에 대한 영화

 
 
모든 소재중에서 영화가 쓰기 가장 사용하기 어려운 소재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영화 자체가 예술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에도 그렇고, 작품 자체가 관객 각각의 효용에 기반을 두니, 대단한 권위에 기대지 않고선 통일된 시선을 얻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쇼잉업”은 예술, 그것도 현대 예술을 소재로 골랐다. 나에겐 이 사실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예술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이 영화는 별로 극적이지 않다. 플롯의 가장 큰 변동 요소가 비둘기 한 마리일 정도다. 이 한 마리의 비둘기는 영화의 주인공 리지와 또 다른 인물 조 사이를 가로지르게 되는데. 이 두 인물은 공간적으로 한 곳에 묶여있지만 거의 모든 측면에서 정반대이다.
리지의 안티테제인 조는 그녀의 집주인이자, 떠오르는 작가이다. 포스트 페미니즘 작품활동을 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조는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모두와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관계를 한다.
반면 주인공 리지는 조의 세입자이며, 작가로서 무명에 가깝고, 3명 이상이서 말하는 것을 보기 드물 정도로 내향적이다. 집안 남자들의 무능 때문에 무너진 남성성 속에서 자라난 것이 그 성격의 원인이 됐다. 그리고 리지는 어느 면으로 보나 자신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조를 질투하고 있으며. 조는 그런 리지를 낮잡아 본다.
이런 둘 사이에 비둘기가 끼어들고 둘의 차이는 외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비둘기를 먼저 발견하고 보호와 관리를 선언하였으면서도 실상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조와, 새를 거부했으면서도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비둘기와 교감하는 리지의 행동이 그들이 같은 자원을 두고 다투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비둘기가 외적 갈등의 원인이 된다면 이들의 예술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영화는 대범하게 예술적 표현을 숨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단순히 예술을 외적인 이야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적 감정의 표상으로 위치해 내적 갈등을 극대화한다.
조의 예술은 그의 작품 제목인 ‘아스트랄 햄스터’처럼 역설적이다. 앞서 말한 그녀의 성격과 작가로서의 위치는 그녀의 성별과, 아시아 인종이 미국 사회에서 흔히 겪는 생활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크고 웅장하며. 정해지지 않은 소재를 통해서 그녀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리지의 예술은 작고 고정된 조각상이다. 그녀의 조각은 과장된 몸짓과 다채로운 색깔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거친 조각의 질감이 그것과 대비되며 마치 무언가가 억압된 느낌을 준다. 이런 대비는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고 참아내는 리지의 성격의 표상이다.
영화는 리지와 조각을 장면 안에 동일 선상에 위치시키는 카메라를 통해서 리지의 작품과 리지를 일치시킨다. 영화 포스터의 장면처럼 자신이 만든 조각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예술이 이제까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뛰어난 장면이었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관객에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리지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본질과 같으니 ‘쇼잉업’은 예술가와 예술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본질을 얘기하는 뛰어난 예술에 대한 영화일 수 있었다.